어릴 때는 단순히 ‘멋있는 로봇 형사’ 정도로 기억했던 영화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로보캅(RoboCop, 1987)’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날카로운 영화였어요.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라, 사회 풍자와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뒤엉켜 있는 작품이더라고요.
영화는 가까운 미래의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시작돼요. 범죄와 부패가 극에 달한 도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거대 기업 OCP는 죽은 경찰관 머피를 사이보그로 부활시켜 ‘로보캅’이라는 새로운 치안 시스템을 만들죠.
처음엔 철저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지만, 점점 머피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는 자아를 되찾아가요. 그리고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을 향해, 인간적인 분노와 정의감으로 반격을 시작하죠.
제가 가장 충격적으로 느꼈던 건 단순한 폭력이나 총격이 아니라, 그 폭력에 익숙해진 사회와 언론,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TV 뉴스는 잔혹한 사건을 유머처럼 다루고, 기업은 인간을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하죠. 정말 섬뜩할 정도로 현대 사회와 닮아 있었어요.
그리고 로보캅이 점점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안쓰러우면서도 감동적이었어요. 그는 기억을 되찾았지만, 다시는 ‘예전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그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마치 우리의 현대적인 삶이 ‘기계적인 일상’에 갇혀 있다는 걸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영화 후반, “이름이 뭐지?”라는 질문에 로보캅이 “머피.”라고 대답하는 장면… 그건 액션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감정적인 순간이었어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를 인정한 인간의 선언처럼 느껴졌어요.
감독 폴 버호벤은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토록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외형 속에,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정교하게 숨겨놓을 수 있다니. 그래서 로보캅은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고,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강하게 와닿는 영화인 것 같아요.
만약 누군가가 “로보캅? 그냥 옛날 로봇 액션 아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조용히 말할 거예요. _“그렇게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야.”_